스무트 홀리 관세법은 농산물 관세를 대폭 늘려 농민을 보호하겠다는 후버의 대선 공약을 상원 리드 스무트와 하원의 윌리스 홀리가 뒷받침한 법입니다.
이 스무트 홀리 관세법은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까지 동조해 압도적 찬성으로 상하 양원을 통과합니다.
대공황은 1929년 10월 29일 주가 대폭락이 아니라 1930년 6월 17일 스무트 홀리 관세법 제정 이후 시작 됐습니다.
하지만, 영국 등 20여 나라도 미국산에 보복관세를 물리기 시작한다.
전세계는 영국 파운드, 프랑스 프랑, 그리고 미국 달러로 분할되고 만다.
특히 면화 및 담배 등의 수출이 급격히 혜택을 받아야 할 농민들이 오히려 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7.8%였던 실업률이 25.1%까지 치솟고 전 세계의 교역량은 3분의 1로 줄어 듭니다.
스무트 홀리 관세가 대공항의 주된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세계무역 침체에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
19세기 중반 이후 자유무역주의 노선을 걸어온 영국은 ,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전 식민지들과 규합하여 상호간 관세혜택을 부여하는 제국주의적 관세동맹을 결성
독일 역시 동유럽 국가들과 유사한 특혜무역협정(PTA)을 맺고 역외 국가들에게는 수입허가제(Import Licensing)를 도입
문제는 이렇듯 전 세계적으로 장착된 지역주의 및 보호무역주의는 193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어 경기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점이다.